설교자료/요한복음

[요 2:23] 죄인입니까?

'코이네' 2023. 7. 29. 19:46

죄인입니까? 

 

2:23-25

 

 

종교를 가진다든지 또는 신앙을 가진다고 하는 것은,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과 그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받느냐? 하는데 근간이 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종교가 있는 곳에는 인간의 운명이 논의되고, 신앙을 말하는 곳에는 우리들의 사명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항상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교훈과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관이라든지 우리 생각에 치우쳐서 정당하지 못한 때가 간혹 있습니다.

 

인간의 이해에 대한 대표적인 예를 들어 말하면 불교는 유심론입니다. 즉 우리의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인간은 모든것이 움직이고, 이 마음으로 부터 이루어진다고 해서 유심론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많은 모순이 있고 현실과 다른 점도 많이 있지만, 그들의 교조인 석가모니께서 네 마음이 모든것을 주관하고, 지배하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전통적으로 믿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우주가 마음에 있다고 하며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얻기도하고 잃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도를 딲으러 절벽이 높은 산으로 올라가서 축지법 연구 했습니다. 그 목적은 내 마음을 완전히 비우면 저 절벽아래 떨어져도 능히 날아갈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젊은이는 오랜 수양을 통해서 마음을 비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몇사람이 보는 앞에서 절벽을 날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리는데도 자기는 도를 닦았기 때문에 괜찬을 것이라고 하며 절벽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결국 젊은이는 온 몸이 산산히 부서져 죽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유심론이라는 것을 지나치게 믿으면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오늘날 우리 기독교 안에도 이와같은 믿음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게되는데 믿기만 하면 능치 못함이 없다면서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기 욕심이나 자기 신념을 가지고 믿습니다.하며 자기 최면상태에서 날뛰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됩니다.

가령 예를 든다면 어떤 청년이 진실된 믿음을 가지고 열심이 기도하는 믿습니다파 인데 이사람이 성경을 읽으니까 믿는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는 말씀이 있슴니다. 그래서 이사람은 한강으로 갔습니다. 청년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를 걸은것을 믿습니다.백프로 믿습니다.여기에 0.00001프로도 의심이 없습니다. 베드로가 물위를 걸은 것처럼 저도 이 한강물을 걷겠습니다.믿는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고 하신 말씀대로 믿고 걷겠습니다. 하고 물위를 들어 갔습니다. 이 청년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기를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하신것 처럼 마음으론 다 생각이 가지만 우리 인간의 육체가 그것을 따를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흘리며 기도하실때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기를 바라시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졸며 자게되었을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들의 마음은 나하고 기도하고 싶지만 너희 육체가 그렇지는 못하구나!한 것입니다.

가령 석가라고 한다면 이렇게 이야기 해야 하겠지요 왜 네 마음으로 육신을 이기지 못하느냐? 다 마음먹기 나름이니라...’ 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아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약한지를 우리의 육신이 얼마나 강하게 지배를 하는지를 아십니다.

 

또 공자나 맹자의 교훈을 받아 들이게 된다면 성선설을 받아들입니다. 즉 사람은 나면서 부터 다 착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맹자에게 있어서는 사람이 태어나면서 선악을 가리게 되어 잇다는 것입니다.

즉 태양이 밝기 때문에 태양은 언제나 밝지만은 구름이 끼게되면 어두워지는 것이다. 그 구름을 제거하면 태양은 언제나 밝은 것이듯, 인간은 양심을 가지고 선천적으로 선한 성품을 가지고 있는데 욕심이 그것을 가리우기 때문에 선한 성품이 나타나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있어 욕심을 제거하면 우리 모두는 착한 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는 않습니다. 공자나 맹자가 주장하는 성선설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본래부터 죄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갓난 아이때 부터 움켜쥐려는 마음, 남의 것을 빼았으려는 마음, 많이 가지려는 마음,커가면서 다른 아이와 싸우려는 마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마음,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은 모두가 가르쳐 준것도 아니며 본성적으로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개인적으로 노력을 해서 이겨 낼수 없는 악의 세력들 입니다.

 

히랍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아는 것이 곧 진리라고 봅니다. 왜 악이 생기느냐? 무지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알기만하면 선해 질텐데 무지하기 때문에 악을 행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 어떤 청년이 도적질을 하다가 교도소에 드러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교도관이 생각하기를 이 청년이 범죄하게 된것은 배우지를 못해서 즉 무식해서 죄를 범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이 사람을 바른 사람을 만들기 위해 교육을 열심이 시키었습니다.그래서 이사람은 교도소에 있는 동안 많은 공부를 해서 정말로 상당한 지식수준에 이르러 출감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후 이 사람이 다시 죄를 짓고 교도소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실망한 교도관이 그를 찾아가 죄목을 알아보니 문서위조에다 사기죄를 저지르고 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사상가인 키에르케고르는 아는것과 행하는 것 사이에 얼마나 거리가 멀다는 것을 몰랐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보는 성경말씀과 예수님은 우리 인간속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는가를 인정 하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인간의 좋은 점 보다는 인간의 악함과 추잡함을 보게 됩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이 자기 목숨을 살기위해 자기 아내를 자기 누이라고 속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이삭도 아버지 처럼 자기 목숨위험하다고 생각하니까 아내를 누이라고하며 비겁한 짓을 하기도 합니다.

야곱은 어떻습니까? 간교하고 수단꾼입니다. 할례받지 못한 사람이라하여 사람들을 잔인하게 몰살을 시키는 짓도 서슴없이 합니다. 롯의 딸은 아버지와 동침을 합니다. 며느리가 시아버지와 동침을 합니다. 여러분 성경에 별별 추잡한 이야기가 다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이 이렇게 추잡한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경전의 가치가 없다고 하는 말을 합니다.

거룩하고 깨끗한 것만 이야기하면 종교의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지적하고 거기에서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참된 종교요 가치있는 신앙이 되는 것인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신 인간은 유심론, 성선설, 관념적 이상주의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보신 인간은 죄인된 인간 그대로를 보신 것입니다. 마음이 조석지변인 인간의 모습 그대로를 보신 것입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이기적인 것에 따라 항상 변하는 인간을 아시는 것입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뱄는 사람임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지만 주님은 그들에게 자신을 맡기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 모습 그대로를 보시고 인정하시고 받아들이시는 것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구원이 필요하다,병들었기 때문애 의원이 필요하다, 약하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의 부끄러운 삶의 모습을 책망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가 삶을 바꾸고 감당할수 있는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와 힘을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돌로 쳐 죽이라는 군중들을 향하여 너희 중에 마음에 가책을 받지 않는 사람이 돌로 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여자에게 나도 너를 처벌하지 않겠다. 그러나 다시는 이런 죄를 저질르지 말도록 하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게 될때에, 우리가 연약한 사람임을 알게 될때에, 내가 죄인임을 알고 죄를 또 다시 지을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필요로 합니다. 주님앞에 나와야 합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자기가 죄인임을 알때에 하나님의 은혜는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됨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죄인이 아니고는 주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알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하는 여러분! 사람들이 나를 버리고 갈때 주님은 나를 찾아 오셨습니다. 주위의 사랑했던 사람들이 내가 병들었을때 나를 버리고 갔고 나의 아픔을 나누지 못하고 이해 하지 못할때 주님은 찾아 오셔서 위로하셨고 나의 병을 짊어 지셨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괴로워할때 주님은 내가 너를 깨끗하게 해주마 하시었던 것입니다.

너무 너무 외롭고 고독하고 마음이 아파서 몸이 아파서 울고 울때에 주님은 찾아와 친구가 되어 주시고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 주시고 자비의 손으로 저를 어루만져 주셨던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부모도 이해해 주지 못할때가 있습니다. 다정했던 친구는 안아요. 아닙니다. 사랑하는 아내도 남편도 알아주지 못합니다. 외롭고 쓸쓸할때가 있습니다. 가슴 져미는 아픔이 있을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때에 예수님을 부르십시요 이때에 예수님앞에서 눈물을 흘리세요 사람앞에서 울필요가 없습니다. 절대 그 사람이 위로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곡성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여러분을 이해해 주십니다. 위로해 주십니다. 힘을 주십니다. 그리고 이기게 하여 복된 삶을 살게 해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 멘

 

주 밖에 누가 알아 주랴 영광 할렐루야 !

오늘 이 아침 우리 인간의 연약함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살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저희들을 자비의 손으로 붙잡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끄럽지 않게 하여 주옵시고 늘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일평생을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교통하는 복된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