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사야서 60: 1- 3, 요한복음 1: 1-14
설교 : 유경재 목사 <2000년 1월 1일>
새로운 천년을 여는 새해 아침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가 새해 특히 금년과 같이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는 해에 특별한 의미를 두는 것은 무엇인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날들을 돌아볼 때 우리의 역사가 기대만큼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반성이 있을수록 새해는 더욱 기대를 갖고 맞기 마련입니다. 비록 우리의 삶을 되돌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지난날의 과오와 오류를 반복하지 않고 바른 삶을 살 수 있기를 기원할 수 있기에 새해는 언제나 우리에게 신선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경험한 대로 새해 벽두에 새롭게 마음을 다지지만 결국 또다시 얼룩진 역사를 기록하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약함 때문이며, 그 죄악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바른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힘으로는 어렵고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을 하는 것입니다.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이끌어 주신다면 우리는 실패하지 않는 삶을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새롭게 맞는 천년의 첫 새해에 단순하게 우리의 각오와 다짐을 새롭게 하는데 끝나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면서 그의 인도하심과 그의 가르치심을 따라서 새 천년을 살아가도록 다짐하여야 하겠습니다.
물러가지 않는 우리 속의 어둠
오늘 읽어드린 이사야서 60장의 말씀은 예루살렘의 미래를 예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희망을 안고 돌아왔지만 예루살렘 성은 기대한 것과는 달리 초라했고, 그들의 경제적인 형편은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그들을 노리는 적들은 여전히 그들을 둘러싸고 있으며, 여러 가지 삶의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낙담한 예루살렘 거민들이 원망을 늘어놓았던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은 다시 거룩한 도성이 될 것인가?" "바벨론 포로 생활보다 나은 삶은 과연 가능한가?"
이런 불평과 원망이 들려지자 예언자가 나타나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밤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예언자는 외치기를 이미 해가 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그 백성 위에 비치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영광의 아침이 동터오는데 이 빛을 보지 못하고 여전히 불평과 불만에 사로잡혀 원망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한 책망과 경고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새 천년의 해가 처음 돋는 것을 보려고 뉴질랜드 가장 동쪽에 있는 도시 기스본을 찾아가는가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정동진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 있습니다. 해 뜨는 것을 보고자 함은 해 돋음에서 희망을 배우고자 함이며, 힘차게 솟아오르는 태양처럼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다짐하기 위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우리의 희망을 박두진은 그의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이글 애뙨 얼굴 고은 해야 솟아라. (중략)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애뙤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돋는 해를 바라보지만 그 해가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 그 해를 바라보면서 희망을 다짐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어둠은 절망을 상징한다면, 해는 희망을 상징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해가 뜨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있는 어둠을 밝히기 위해서는 아침에 솟는 해를 바라보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아무리 해가 제일 먼저 뜬다는 뉴질랜드나 피지 섬을 찾아간다 할지라도 우리 속에 자리잡은 절망의 어둠은 물러가지 않습니다. 새 천년을 맞는다고 나라마다 요란한 행사를 하지만 그것이 그 사회 속에 깃들인 어둠을 몰아내지는 못합니다. 결국 새 천년을 맞이하면서 처음 돋는 해를 보겠다는 마음은 그 옛날 태양신을 섬기던 그런 마음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낙담하여 있을 때 예언자가 그들 앞에 재빨리 나타나서 "주의 영광이 아침해처럼 너의 위에 떠올랐다"고 외쳤습니다. 예루살렘 거민들이 바라보아야 할 것은 아침해가 아니라 아침해처럼 떠오른 주님의 영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절망의 어둠을 물러가게 할 참빛인 주님의 영광이 그들 위에 떠올랐다고 외쳤던 것입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속에 깃들인 어둠을 몰아내는 일입니다. 아무리 새 천년의 해가 돋는다 해도 우리 속에 우리를 짓누르는 어둠이 깃들여 있다면 이 새 천년의 새해 역시 지난날처럼 절망에 눌린 한 해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으며, 그 생명은 곧 사람들의 빛이 되었다고 하면서 "그 빛이 세상에 오셨으니,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 그가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모든 사람을 비춘다는 것은 그들 속에 깃들인 죄의 어둠을 밝힌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요8:12)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의 어둠을 몰아내시고 생명의 빛을 비추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해돋이를 구경하려고 동쪽으로 몰려갔지만, 진정한 해돋이 구경은 바로 주님께 예배드리는 여기서 가능한 것입니다.
예언자의 "일어나라"는 외침은 '탄식하는 자들에게 지친 상태를 털어 버리고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낙담하여 한숨지으며 원망이나 하고 있던 데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지금 주님의 영광의 빛이 해처럼 떠오르고 있는데, 낙담하여 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서 그 빛을 영접하러 나가라는 뜻입니다. 지금 생명의 참 빛이 떠오르고 있는데도 알지 못한 채 절망의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일어나라고 외쳐야 하겠습니다. 새 천년을 비칠 진정한 태양이 떠오르고 있는 줄 모르고 엉뚱한 곳을 찾아가 해돋이를 구경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고 외쳐야 하겠습니다. 아니 이사야의 이 외침은 바로 오늘 우리를 향한 외침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짓누르는 생활의 근심과 걱정들, 질병과 고통, 인간관계에서 받은 상처들, 어리석은 욕망으로 저지른 잘못 때문에 얻은 고민과 번뇌 때문에 괴로움을 안고 이 자리에 나온 우리를 향하여 예언자는 일어나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떠오르는 빛은 생명의 빛이며, 주님의 영광에서 나오는 빛입니다. 이 빛 앞에 우리가 설 때 우리 속에 있던 어둠은 그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빛은 강력하며 동시에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다 주는 빛이기에, 이 빛을 우리 속에 영접하면 모든 근심과 걱정과 번뇌는 사라지고 오직 기쁨과 생명의 약동만이 우리 속에 넘치게 됩니다.
빛을 발하라
우리 속에 들어온 빛은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그 빛은 반사를 통하여 다른 사람을 비추는 빛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우리 속에 비추면 우리가 변하여 발광체가 되어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예언자는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빛을 발하라"는 말은 빛을 받아드리라는 말과 같습니다. 빛이 올 때 그 빛을 받으면 그 빛이 우리를 변화시켜 그 빛을 반사하게 되어 마치 우리 속에서 빛이 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빛을 반사하라고 하지 않고 "빛을 발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참 빛을 영접하면 그 빛은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우리에게서 나간 빛이 또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따른 제자들을 통하여 그 빛은 강력하게 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 모두가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모두가 세상을 비추는 참 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한해 한국교회는 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는 대신 욕을 먹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이 올바르지 못하였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참 빛을 제대로 받아드리지 않았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런 한국 교회를 향하여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둠에 길들여져 교회들도 그 빛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세상 논리를 따라서 성장제일주의로 나갔던 교회들이 크게 성장은 했으나 막상 그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지 못하므로 세상을 향하여 빛을 비추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새해에는 한국 교회가 그 위에 임하신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민족을 덮고 있는 어둠을 밝혀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 환히 빛이 납니다. 늘 밝은 얼굴을 하고 있어 보는 사람에게 호감을 줍니다. 반대로 그 안에 빛이 없는 사람, 근심에 눌린 사람의 얼굴을 보면 웃음이 없고 그늘이 져 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오랜 고난의 역사를 거치면서 그 얼굴에서 웃음을 잃어버려 그 표정이 굳어져 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이요, 화난 얼굴들입니다. 그런 중에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그 표정이 많이 밝아졌지만, 그래도 오랜 시간 굳어진 표정이 좀처럼 풀리지를 않는 것 같습니다. 이 굳어진 표정 속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제 이런 한국 교회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이사야 예언자는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새해에는 여러분 속에 받아드린 그리스도의 빛을 감추지 말고 나타내십시오. 좀더 밝은 얼굴로 사람들을 만나고 즐거운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십시오. 꾸민 얼굴이 아닌 여러분 속에서 울어나는 빛을 나타내는 밝은 얼굴로 가정을 밝게 하고, 교회 분위기를 명랑하게 바꾸십시오. 옛날 양반들은 가능하면 애환을 그 표정에 잘 나타내지 않으려고 하였는데, 아마도 그런 습성이 우리 속에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감정은 감추어도 우리 속에 들어온 빛은 감추지 마십시오. 경망하지는 않으면서도 밝은 표정, 깔깔거리고 웃지는 않아도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빛나는 얼굴을 찾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그 빛나는 얼굴의 빛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이 될 것입니다. 새해에는 일어나서 빛을 발하여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와 이 사회를 밝게 만드시기 바랍니다.
어둠이 땅을 덮어도
이사야서 60장 2절에 보면 "어둠이 땅을 덮으며, 짙은 어둠이 민족들을 덮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너의 위에는 주께서 아침해처럼 떠오르시며, 그의 영광이 너의 위에 나타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구름이 해를 가린 것처럼 어둠의 세력이 빛을 가릴 때가 있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 구름 위에는 태양이 여전히 빛나는 것처럼 주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위에 빛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구름이 끼었다 해가 나왔다가 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해가 빛나는 때처럼 즐거운 날들이 있는가 하면, 짙은 구름이 끼인 것처럼 질병이나 어려운 문제들 때문에 근심 걱정과 번뇌에 휩싸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 근심의 구름 위에는 항상 주님의 영광의 빛이 빛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가정에 구름이 끼었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 구름 위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빛나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지금 이 사회 속에 구름이 끼어 있어서 어둡고 혼란스럽지만,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그 구름이 걷힐 때를 기다리면 그 위에서 빛나는 주님의 영광의 빛이 이 사회를 밝게 만들 것입니다. 이 땅의 어둠은 물러가고 빛의 질서와 열매가 맺히면서 이 사회는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그 때를 위해 끊임없이 소망을 갖고 기다리며 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민족의 하늘에는 오랫동안 불신과 증오의 구름이 끼어서 좀처럼 걷히지 않고 있지만, 그러나 그 위에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환히 빛나고 있음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이 구름이 걷히는 날 이 땅을 뒤덮었던 불신과 증오가 사라지고 신뢰와 사랑이 회복되는 민족의 통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이 허락하신 새 천년의 아름다운 땅이 우리 앞에 활짝 열렸습니다. 우리를 뒤덮었던 이 땅의 음울한 근심과 걱정과 불안과 절망을 털고 일어나 이제 태양처럼 떠오르는 주님의 생명의 빛을 받읍시다. 그 빛 안에서 우리 자신이 변하고, 그 빛을 내 몸으로 반사하여 나타내므로 이 땅의 모든 어둠을 몰아냅시다. 그래서 여기에 빛의 역사,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시켜 나갑시다.
우리 안동교회는 90주년을 맞아 지난 역사를 감사하면서 빛을 발하는 교회로 서기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여 왔습니다. 한 때는 우리 속에 짙은 구름처럼 이 교회를 뒤덮고 있었던 혼란과 부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구름은 걷히고 주님의 영광이 이 교회 가운데 비추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좀더 적극적으로 그 빛을 받아서 우리 삶 구석구석을 비추어 모든 부정적인 요소들을 몰아내고 빛나는 거울처럼 그 빛을 세상을 향하여 반사하는 교회가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맞는 새 천년은 과거를 바탕으로 하여 도약하는 해요,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을 생활화하고 사랑으로 봉사하고 헌신하는 천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밝아오는 새 천년의 첫해의 새 아침 주님의 영광의 광채가 찬란하게 우리 앞에 떠오르고 있음을 바라보면서 그 빛을 여러분 속에 흠뻑 받아드리므로 아름다운 빛의 열매를 맺고, 그 빛으로 세상의 어둠을 밝혀 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풍성한 은총과 그 영광의 광채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이 사회와 민족 가운데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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